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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2월 - 독립 영웅

국채보상운동을 주도

김광제,서상돈

2월의 독립운동가
김광제(1866.7.1~1920.7.24) 선생
김광제 선생님은 충남보령에서 태어나한학을 수학한 뒤 관직으로 나아가훈련원 첨정, 호남시찰사, 동래경무관등을역임하셨습니다. 특히 동래경무관으로 재직중, 1905년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외교권을 박탈하자 이에크게 제행하였습니다. 관직을 사직하면서 친일파탄핵과 내정의부정부패 일소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던 것입니다. 이로인해 전남고군산도로 유배되었지만뜻을 굽히지 않았고, 1906년 대구로 옮겨서상돈 선생과 함께광문사를 설립하여 사장에 취임하였습니다.
서상돈(1850.11.10~1913.6.30) 선생
서상돈선생님은경복감독실한 천주교에서태에내보부상으로 발하여 대구의 경제권을 좌우할정도의큰 재산을 모았습니다. 천주교의 영향으로 일찍이 신사고와 근대의식을 가져독립협회가창설되자 여기에 적극참여하였습니다. 독립협회의 재무담당간부로 활동하는 한편, 1898년만민공동회에 참여하여 외세의 내정간섭을 규탄하며국권수호와 민권신장에 힘썼습니다. 하지만수구파의 탄압으로 독립협회가 해산되자 대구로 내려와 김광제선생과 함께광문사를 세워 부사장이 되었습니다.
광문사는 외국의 선진학문을 소개하고 실학서적을 번역편찬하여 근대사상을 전파하고, 자주자강의식을 고취하는 계몽운동을 펼쳤습니다. 문화사업을통한 광문사의 애국계몽운동의 중심에는 사장인 김광제선생과 부사장인 서상돈 선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외세의 간섭으로 인한 국망의 위기가 과다한
국가의 빚, 즉 국채로인한 것으로 인식하고 국채보상운동의 뜻을 갖게되었습니다.
1907년1월광문사특별회의를 마친뒤 서상돈 선생의 발의와 김광제선생의 적극찬동으로 국채보상운동의팟불을 올렸습니다. 금주·단연으로의연금을 모아 국채 1,300만원을 상환함으로써 자주독립국가를 이루자는 국채보상운동의 물결은 이후 전국 각지로 파급되어 거족적인민족운동의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같은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조직된국채보상연합회의소가주도하였고, 그 중심에는
이운동을발의하여 주도한 김광제 선생과 서상돈 선생이 있었던 것입니다.
김광생을 통정 등 교육단체를 세워국민계몽을 통한 실력양성에 힘썼습니다. 경술국치 이후에도 만주에 일신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을 실시하였고, 1920년 제2의 3·1운동을 추진하여꺾이지 않는항일의지를 분출하였습니다. 나아가 조선노동대회라는 노동운동단체를 조직하여 민중계몽과 민족의식고취에 노력하다, 1920년7월 24일55세를일기로 서거하였습니다.
서상돈 선생은 일제의 탄압으로 국채보상운동이좌절되자 사업활동에 전념하여 실업진흥을 통한민족실력양성에 에쓰다, 1913년6월30일64세를일기로 서거하였습니다. 정부는 두 분선생의공훈을 기리어 1990년 김광제선생, 1999년 서상돈 선생에게 각기 전국훈장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여 관련자료와 사진을2월한달간 전시하는 한편, 순국선열유족회에서도선생에 대한공훈선양학술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천안 독립기념관 : 041-560-0221~6
독립문공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02-363-9750
순국선열유족회 : 02-365-4388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김광제,서상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