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화

일제의 국권 침탈에 저항하여 무장 항일투쟁을 한 의병

영웅정보

김도화
  • 이름

    김도화

  • 성별

    남성

  • 일생

    1825~1912

소개글
일제의 국권 침탈에 저항하여 무장 항일투쟁을 한 의병

영웅 연대기

ㅇ 김도화의 의병운동과 상소투쟁 김도화(金道和, 1825∼1912)는 경상도 안동 출신의 유학자이자 의병장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달민(達民), 호는 척암(拓庵)이다. 1825년 9월 6일 안동군 일직면 구마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약수(金若洙), 어머니는 진양 정씨(晉陽 鄭氏)이다. 퇴계 학맥을 계승하던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시행되자 1896년 1월부터 의병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안동 의병장이던 권세연이 물러난 뒤 후임으로 추대되어 의병을 이끌게 되었다. ‘창의진정소(倡義陳情疏)’를 올리고 격문을 발표하여 을미사변과 단발령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후 경상도 영주·예안·봉화·의성·청송 등지로 활동 범위를 넓히며 의병을 모집하였고, 서상렬 의진과 연계하여 일본군에 대응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지역 유생과 주민들을 중심으로 의병 조직을 정비하며 의병운동의 기반을 확대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그는 「청파오조약소(請破五條約疏)」라는 상소를 통해 조약 체결의 부당함을 밝히고 국권 보전을 주장하였다. 이후에도 국정 상황이 악화되자 국권 회복을 요구하는 상소문과 격문을 계속 작성하였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에는 이를 비판하는 「청물합방소(請勿合邦疏)」라는 상소를 올렸으며, 통감부와 각국공사관에 격문을 전달하였다. 아울러 집 대문에 ‘합방대반대지가(合邦大反對之家)’라는 현판을 붙여 강제병합을 비판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1912년 8월 7일에 서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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