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영

일제의 국권 침탈에 저항하여 무장 항일투쟁을 한 의병

영웅정보

이춘영
  • 이름

    이춘영

  • 성별

    남성

  • 일생

    1868~1896

소개글
일제의 국권 침탈에 저항하여 무장 항일투쟁을 한 의병

영웅 연대기

ㅇ 이춘영 의병장의 활동 이춘영(李春永, 1868∼1896)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출신의 의병장이다.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이다. 영조 때의 판돈령부사 이기진(李箕鎭)의 5세손으로, 가문은 양평·여주·원주·제천 지역에 걸쳐 넓은 인척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민화(李敏和)이며, 어머니는 여흥 민씨로 참판 민치문(閔致文)의 딸이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났고, 곧 이어 단발령이 공포되자, 반일정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런 흐름에서 1896년 1월, 이춘영은 강원도 원주 안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무장투쟁의 길에 나섰다. 이후 이춘영 의병 부대는 강원도 원주와 충청도 제천, 단양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일본군과 여러 차례 교전을 벌였다. 특히 1896년 1월 22일 단양 장회협(長匯峽)에서 친위대와 의병 사이에 전투가 전개되었고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를 거두어 의병들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 이후 유인석이 이끄는 호좌의진에 합류하였다. 이춘영은 그 휘하에서 중군장으로 임명되어 주요 전투를 지휘하였다. 주로 군사 작전과 병력 운용을 맡으며 호좌의진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원주와 충주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군과 교전하며 의병 세력을 유지하고, 항일 의지를 확산시키는 데 노력하였다. 1896년 2월, 충주 수안보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 전투는 호좌의진이 일본군과 맞서 싸운 대표적인 전투로 꼽힌다. 그러나 치열한 교전 중 그는 일본군의 유탄에 맞아 전장에서 전사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그의 희생과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올해 2026년은 그의 순국 130주년으로 더 뜻깊은 해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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