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아일랜드 선교사, 제주도에서 독립운동

영웅정보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 이름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 성별

    남성

  • 일생

    (1907) ~1971

소개글
아일랜드 선교사, 제주도에서 독립운동

영웅 연대기

어거스틴 스위니는 1909년경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부터 천주교를 신봉하여 1935년 아일랜드 성콜롬반신학교를 졸업하고 콜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목포천주교회에서 시무했다. 1936년 10월부터 제주도 서홍리 천주교성당에 사제로 시무하면서 서신부(徐神父)로 불렸다. 어거스틴 스위니는 1939년 2월 자신의 집에 온 천주교 신자 염군평(廉君平)에게 “일본군이 소주(蘇州)를 점령할 때에 많은 비전투요원을 살해하는 비인도적 행위를 자행했다.”고 폭로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도 중문리에 사는 주민에게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 일본은 물자부족으로 패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1940년 4월 자신의 집에서 염군평과 대화 중“미국이 적극적으로 원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장기화된다. 장기화되면 일본의 승산은 없다.”고 발언했다. 1941년 2월경에도 염군평에게 “미영과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장기화를 꾀하는 일본이 패전하는 것은 확정적이다.”라고 하여 중일전쟁에서 일본의 패전을 확신하였다. 같은 해 4월경에도 영·일전쟁이 일어나면 소련 미국 등이 영국 측에 가담할 것이므로 결국 일본은 패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일본의 전황 보도는 전부 허위다.”라고 발언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금후 2년 이내에 일본군이 패망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예언했다. 전시체제를 구축하고 전쟁협력을 독려하던 일제 당국은 이를 묵과할 수 없었다. 어거스틴 스위니는 1941년 12월경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체포되었고 1942년 5월 26일에 기소되어,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육군형법 및 해군형법위반’으로 금고(禁錮)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금고에서 풀려난 후에도 일제 당국의 철저한 감시를 받는 연금 생활을 하다가 1945년 5월 29일 목포에 연금되어 있던 동료 아일랜드 신부들과 함께 강원도 홍천으로 옮겨 연금되었다. 그곳에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였다. 이후 아일랜드로 돌아가 그 사제 활동을 계속하다가 1980년 1월 19일 별세했다. 1937년 7월 일제의 중일전쟁 도발 이후 1945년 8월까지 전시체제기는, 일제강점기 가운데서도 일제의 강제 동원과 수탈이 자행되던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 더욱이 일제가 보도를 통제하고 그들의 승전만을 과장 보도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운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제주도 아일랜드 신부들의 일제의 패망에 대한 예언은 강제동원과 수탈에 시달리던 제주도의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주민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주는 메시지였다. 일제는 이를 ‘유언비어’라 하여 처벌하였지만, 이들의 전세(戰勢) 판단과 예언은 적중했다. 이들의 메시지는 ‘유언비어’가 아니라 당시 정세와 전황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정확한 정세 파악에 의한 예언이었다.

관련 링크

공훈전자사료관


관련 자료

등록된 관련 자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