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

영웅정보

허은
  • 이름

    허은

  • 성별

    여성

  • 일생

    1909 ~1997

소개글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

영웅 연대기

허은(許銀, 1909~1997)은 아버지 허발(許土犮)과 어머니 이산운(李山運) 사이에서 3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조부는 허형(許蘅)이며, 이육사의 어머니 허길이 바로 그의 고모이다. 또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왕산(旺山) 허위(許蔿)가 그의 재종조부이다. 허위 일가는 1908년 허위가 순국하고, 1910년 나라마저 무너지자, 연이어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5년 4월 허은의 할아버지 허형도 가족들을 이끌고 망명길에 올랐다. 그 망명길에 허은이 함께하였고, 어린 소녀가 견디기 어려운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망명길도 정착 과정도 고통 그 자체였다. 일가는 퉁화현(通化縣)의 여러 곳을 거쳐 겨우 류허헌(柳河縣) 우두거우에 정착하였다. 허은은 당시 겨우 10살을 넘긴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를 도와 농사와 가사를 돌보며 성장하였다. 청산리전투 후 일본군의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되자, 1922년 1월 허은은 가족들과 함께 다시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닝안현(寧安縣)으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혼인이 정해져, 1922년 음력 섣달 이상룡(李相龍)의 손자 이병화(李炳華, 1906~1952)와 혼인하게 되었다. 그 뒤 허은은 판스현(磐石縣) ‧ 수란현(舒蘭縣) 등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가족은 물론 만주지역 항일지사들의 그림자가 되어 온갖 고난을 견뎌냈다. 허은은“개간에는 이력이 났다.”고 표현할 정도로 시어머니 이중숙과 함께 농사일을 도맡아 했다. 특히 허은은 서로군정서 대원들의 의 ․ 식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여성들은 광목과 솜뭉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대량으로 대원들의 옷을 생산했는데, 허은도 그 일을 숱하게 하였다. 뒷날 “김동삼 ․ 김형식 등에게 손수 옷을 지어 드렸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개가 헤아릴 길 없다.”고 회고하였다. 왕래하는 독립운동가들과 대원들의 음식 제공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각종 회의가 집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허은은 회의 때마다 늘 부족한 먹거리를 마련하느라 고충이 컸다. 농사가 흉년일 때는 중국 사람이 경영하는 피복 공장에서 단추구멍 만드는 일감을 가져와 부업을 해서 음식을 마련하기도 했다. “조직원들을 해 먹이는 일 자체가 큰 역사였으며, 작은 국가 하나 경영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한 허은의 회고는 만주 항일투쟁사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시사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1932년 시조부 이상룡이 순국하자 허은은 귀국하였다. 귀국 후 허은은 그 모질던 세월을 1995년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 소리가』라는 회고록으로 담아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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