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오금손
6·25 전쟁영웅 2018.04.13 조회 18169 1

62_일평생_나라를지킨_오금손_대위

 

 

 

독립운동가로, 간호사로, 안보 전도사로

일평생 나라를 지킨 '백골 할머니'

오금손 대위

 

 

1931년 2월 20일 북경, 오금손은 독립 운동가 오수암 선생의 외동딸로 출생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중국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광복군 제 3지대 소속으로 항일 투장의 길에 들어섭니다.

 

 

광복 이후, 그는 개성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개성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나 평화로운 일상도 잠시,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납니다.

오금손은 조국을 위해 자진입대를 결심합니다.

 

 

전쟁이 한참이던 1950년 8월, 오금손은 포항 형산강지구전투에서 부상자들을 돌봤습니다.

북한군이 병원을 기습하자, 부상자들을 간호하던 오금손은 이를 물리치고 6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려

2계급 특진하여 대위로 진급하게 됩니다.

 

 

오금손 대위는 독립군 시절의 경험을 살려, 전투장교로서 맹활약했습니다. 

금화와 철원 중간 지점에 위치한 K고지 전투 중 오금손 대위는 전우들과 함께 북한군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북한군의 고문과 회유가 이어졌지만, 오금손 대위는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북한군이 교전에 빠진 순간, 필사적으로 부대에 복귀해 끝까지 임무를 마칩니다.

그러나 탈출 과정에서 다리 관통상과 허리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었고,

결국, 부상이 재발돼 군을 떠나게 됩니다.

 

 

전역은 했지만, 오금손 대위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백골 할머니'라는 별명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전쟁의 참상과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안보 전도사로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말고개라는 곳에 새까만 나무 조각이 있어서 깔고 앉았는데, 양쪽에서 고름이 쫙 나오더군요.

알고보니 불에 탄 사람의 시체였습니다. 정말 전쟁의 참혹한 참상이었지요."

 

그는 무려 5013회의 안보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데 앞장섰습니다.

 

 

오금손 대위는 우리 국민의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위해,

'영광의 가시밭길', '파로호', '60만 대군이 보는 파로호' 등 3권의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조국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조국의 안보를 위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헌신한 오금손 대위!

그의 변함없는 애국심은 우리 모두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