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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독립운동가 2018.04.13 조회 2393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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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치마 속에 숨긴 독립자금 정정화열사

"어린아이가 집 밖에 나가 놀 때도 어머니는 늘 집안에 계시듯 조국은, 잃어버린 조국은 늘 그렇게 내 마음 속에 있었다." 정정화 열사 회고록 <녹두꽃>중

 

대한민국임시정부 이야기를 하면, 김구 선생이나 이동녕 선생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서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았던 사람을 알고 있는 이는 적습니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임시정부를 위해 일평생을 헌신한 '한국의 잔다르크' 정정화 열사의 이야기입니다.

 

정정화 열사는 1900년 수원유수를 지낸 정주영의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유복하게 자랐지만, 부친의 반대로 학업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몰래 서당을 다니며 글을 익혀 나갔던 영민하고 지혜로운 여성이었습니다.

 

이후 개화파 집안에서 성장한 김의한과 혼인하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됩니다. 시아버지 김가진과 남편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한 정정화 열사는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는 먼 여정을 시작합니다. 여성이기에, 일제의 감시가 덜 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우리는 압록강을 가로질러 쪽배를 띄웠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어디에선가 일경들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을 옥죄는 두려움을 떨쳐가며 그녀가 압록강을 건넌 횟수는 무려 여섯 번.

세 번째로 건너던 때는 일경에 체포되어 심문을 당하고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몇 번이나 더 국내로 돌아와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는데 힘썼습니다.

 

1920년대 임시정부가 위기를 맞으며 연통제가 폐쇄되자, 그녀는 칠흑 같은 야음을 틈타 압록강을 건너가며 밀사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위급했던 당시 상황은 '장강일기'와 회고록 '녹두꽃'에 절절히 드러납니다.

 

정정화 열사는 이후, 1934년 한국국민당에 정식으로 입당하여 활동했습니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을 조직하고 간부로서 항일활동을 전개했으며, 1941년에는 충칭 3.1 유치원 교사로 임명되어 독립운동가 자녀들을 교육했습니다.

 

그러나 8.15 광복 이후 만주에서 홀로 귀국하게 됩니다.

6.25전쟁 당시 남편 김의한이 납북되면서, 열사는 부역죄로 투옥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1990년 정부로부터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한 정부,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5년 조국독립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27년간이나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기나긴 여정에는 뜨거운 애국심으로 한결같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섬긴 정정화 열사가 계셨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정정화 열사처럼 조국독립을 위해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신 분들이 계셨기에 이룩된 나라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