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이태준
독립운동가 2018.04.13 조회 23861 0

50_몽골의_슈바이처_이태준 

 

이태준

 

조국을 사랑한 '몽골의 슈바이처' 의열단원 이태준 선생

 

의열단의 활동을 그린 영화 <밀정>에는 '마자르'라는 외국인이 등장합니다.

푸른 눈의 헝가리인은 어떻게 조선의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 걸까요?

 

1907년 당시 세브란스의 학교에는 전도유망한 의대생 이태준이 있었습니다.

그는 1910년 2월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로 입원한 안창호 선생과 만나게 됩니다.

안창호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로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석방되어 입원한 것이었습니다.

선생에게 크게 감동한 이태준은 청년학우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1911년 말, 일제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이태준 선생은 동료들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합니다.

이후 중국에서 의사로, 상해 임시정부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이태준은 독립운동 근거지를 구축하려는 뜻을 품고, 몽골 고륜으로 이주합니다.

 

그 곳에서 이태준 선생은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설립하여 전염병을 근절시키고, 몽골 마지막 국왕의 주치의로 활약하며 의사로서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몽골인들은 그를 '신' 또는 '부처'라고 칭송했고, 몽골 정보는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에르데닌 오치르'를 이태준 선생에게 수여합니다.

 

당시 의사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독립을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청년 이태준은 독립운동가로서 험난한 삶을 선택합니다.

그는 독립운동가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자청하기 시작하죠.

 

파리강화회의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파견된 김규식에게 2천원의 독립자금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독립운동 자금 운반책으로서의 연락을 성실하게 수행해냅니다.

임무를 마치고, 고륜으로 돌아오던 길에 그는 북경에서 김원봉을 만나 운명적으로 의열단에 가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운전기사이자 폭탄 제조 기술자였던 '푸른 눈의 헝가리인' '마자르'를 의열단 단장 김원봉에게 소개해주기로 약속하게 됩니다.

마자르는 당시 이태준 선생과 함께 고륜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도와주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륜은 러시아 군에게 점령되어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이태준 선생은 의열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고륜으로 향했고, 결국 러시아의 운게른 부대에 붙잡혀 38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태준의 노력으로 마자르는 북경에 도착하여, 의열단에게 폭탄을 제공하게 됩니다.

 

이태준 선생은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인간애를 실천했던 몽골의 슈바이처이자,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전달하는데도 큰 활약을 펼쳤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조국을 위해 열과 성을 다 바치면서도 의사로서 직업윤리까지 지켰던 이태준 선생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