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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독립운동가 2018.04.13 조회 26006 1

48_청산리전투의_숨은주역_이범석 

 

이범석

 

"조국이라는 말처럼, 온 인류 각 민족에게 강력한 감동과 영향을 주는 말은 없다."

청산리전투의 숨은 주역, 이범석 장군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독립투쟁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청산리대첩.

김좌진 장군이 이끌었던 북로군정서가 진두지휘 했던 유명한 전투에서 우리는 숨은 주역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철기 이범석

그는 1900년 10월 서울 용동에서 4대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농상공부 서기관으로 재직하였고, 외삼촌은 개화기 지식인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덕분에 유복한 환경에서 근대적 사고와 신학문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일찍이 개화사상에 눈을 뜬 이범석의 아버지는 집안의 노비들을 모두 해방시켰습니다.

아들과 정이 들어 떠나지 않은 노비 정태규를 군에 입대시키지만,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 당하자, 정태규가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이범석은 항일 의식을 갖게 되죠.

 

1915년 학생 이범석은 여운형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합니다.

상해에서 독립군 장교가 되는 첫발을 내디뎠고, 만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중국군 견습사관 활동, 신흥무관학교 독립군 양성 지원등에 힘쓰다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에 합류하게 되죠.

이 만남은 우리 역사에 있어 천재일우가 되었습니다.

 

이즈음 일제는 독립군을 탄압하기 위하여 간도에 병력을 투입하고 포위해 들어왔습니다.

결국, 청산리 일대에서 피할 수 없는 일전을 벌이게 됩니다.

1920년 10월 21일, 북로군정서와 대한독립군, 국민군 등의 연합부대로 이루어진 약 2천여 명의 군사들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섬멸하는 대승리를 이끌어 냅니다.

 

이 청산리전투에서 이범석 장군은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일본군의 진로에서 오래된 말똥을 뿌려 두었습니다.

이를 본 일본군은 독립군이 오래전에 지나간 것으로 알고 안심하게 됩니다.

이 때, 이범석 장군의 지휘하던 제 2제대 600명의 군사들은 계곡에 숨어 있다 방심한 일본군을 소탕하여 큰 공을 세웠습니다.

 

청산리대첩 이후에도 일제에 의해 여러 차례 고초를 겪었던 이범석은, 중국 시안으로 건너가 광복군의 교육훈련을 진행하며 항일투쟁을 이어나갑니다.

또한 임시정부, 미국 첩보국과 합작하여 일본군을 무장 해제하기 위해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기도 했죠.

조국광복을 위해 만발의 준비를 하였으나, 일제의 항복으로 실행하지는 못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조국광복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범석 장군은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군 창설과 육성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독립군과 광복군을 진두지휘한 장군으로, 광복이후에는 국가건설에 기여한 정치인으로 파란만장했던 한국정치사의 주역으로 활동하다 1972년 별세하셨습니다.

정부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3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조국독립을 위해 무장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던 숨은 공신 이범석 장군.

그는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한 사람이었고, 조국이 민족에게 얼마나 위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일깨워주신 겨레의 등불이었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 오늘날 '조국'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한번쯤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