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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옥
독립운동가 2018.04.13 조회 18065 0

45_평생을_조국에바친_하늘위의독립군_권기옥 

 

권기옥 

 

평생을 조국에 바친 하늘 위의 독립군 

한국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 권기옥 

 

1917년 5월, 서울 여의도 비행자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모여 들었습니다. 

미국의 곡예 비행사 스미스(A. Smith)의 멋진 비행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죠. 

그들 가운데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창공을 바라보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가 바로 훗날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가 된 권기옥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민했던 선생은 비밀 결사대 송죽회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감시에 시달리다 중국으로 생사를 건 망명을 하게 됩니다. 

 

중국에 간 선생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항공 학교를 수소문합니다. 

하늘을 꼭 날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였습니다. 

"내 꼭, 비행사가 되어 일본 천황 궁에 폭탄을 안고 가리라." 

 

하지만, 항공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자라는 이유고 입학을 거절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선생은 마지막으로, 중국 남서부 외곽에 있는 한 항공학교를 찾아가게 됩니다. 

 

"나는 여자지만, 나라가 망한 한을 풀기 위해 비행사가 되려고 왔습니다."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이역만리를 건너온 그녀의 의지에 감동한 학교장은 입학을 허가했습니다. 

 

권기옥 선생은 중국 윈난 육군항공학교에서운남육군항공학교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강한 의지로 훈련 비행훈련비행 9시간 만에 단독 비행을 허가받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일본 관헌이 여러 차례 선생을 암살하려 했지만, 1925년 3월, 마침내 중국 윈난 육군항공학교운남육군항공학교 1기 졸업생 자격으로 당당히 조종석에 앉게 됩니다. 

 

선생은 비행기 한 대조차대 조차 살 돈이 없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열악한 재정 형편으로 인해, 중국 공군에 들어가게 됩니다. 

비록 중국 공군의 전투기 조종사가 됐지만, 일본 적진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전역 후에도, 독립 운동가였던 남편 이상정 선생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해 일했습니다. 

1943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에서 김순애, 방수니방순이 등과 한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여성들의 독립사상을독립 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조국 광복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오직 항일 투쟁에 앞장섰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이자,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 

평생을 나라에 바친 하늘 위의 독립군 권기옥 선생.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8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1977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습니다. 

그가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하늘 위에 쓴 역사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