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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드 믈랑
UN참전용사 2018.04.13 조회 18098 0

43_모로드믈랑_벨기에육군소령 

 

 

모로 드 믈랑

 

"인간은 전쟁의 한 가운데서 전우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위대한 창조물이다."

모로 드 믈랑 벨기에 육군 소령

 

1950년, 벨기에 국무회의. 한국의 6·​25전쟁 지원방안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대다수의 의원들은 장비만 지원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방장관이자 상원의원이었던 모로 드 믈랑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벨기에도 한국처럼 열강에 둘러싸인 소국이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한국을 도와야 합니다."

 

모로 드 믈랑은 위원들을 설득해 3500여 명의 벨기에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직접 참전하기 위해 상원의원의 해외 참전을 금지한 벨기에 법률까지 개정했습니다.

 

파병 당시, 모로 드 믈랑의 나이 50세.

그는 당당히 통신장교로 자원해 참전했습니다.

1951년 2월, 벨기에군은 임진강 북쪽 금굴산 진지를 방어하여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냈습니다.

영국군 제29여단의 철수를 돕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6·25전쟁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벨기에를 비롯한 전투 지원 16개국을 포함하여 63개 회원국 190여만 명의 유엔군이 참전 및 지원했습니다.

유엔군은 머나먼 타국에서 인류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선 것입니다.

 

벨기에군은 1951년 1월31일부터 1955년 6월 13일까지 육군 1개 보병대대 약 3천 5백여 명이 참전하였고, 임진강 전투, 학당리 전투, 잣골 전투 등에서 용감히 싸웠습니다.

이들의 참전 이면에는 약소국을 돕자고 한 어느 벨기에인의 숨은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벨기에군의 혁혁한 공을 기리고, 산화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1975년 9월, 경기도 동두천시에 벨기에 ·​ 룩셈부르크 참전 기념탑을 세웠습니다.

"자유와 평화의 신념으로 공산군과 싸우다 고귀한 피를 흘린 전사상자의 이름 위에 하느님의 축복이 계실 것이오." (비문中)

 

"벨기에"에도 한국전쟁 박물관이 있습니다. 방문자들이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한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

박물관을 나설 때, 그들은 또 다른 문구를 보며 생각에 잠기게 되죠.

'더는 잊지 않는다(Forgotten No More)'

 

앞으로는 벨기에라는 나라 이름을 듣거나 방문하게 된다면, 6·​25전쟁 시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모로 드 믈랑 예비역 육군 소령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마을을 가져야하겠습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