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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무 담보바
UN참전용사 2018.04.13 조회 2384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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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무 담보바

 

에티오피아에서 온 이등병

구르무 담보바

 

'에티오피아'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한 때, 가뭄과 내전, 가이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나라, 맨발의 마라톤 영웅 아베베의 조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그런데,6·​25전쟁 발발 시 에티오피아가 우리나라를 도와준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1951년, 에티오피아 지상군 3천 5백여 명이 21일 간의 긴 항해 끝에, 이름도 기후도 낯선 대한민국 부산행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황실 근위대 소속 부대원이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유일하게 병력을 보내주었던 나라, 에티오피아 살레시오 황제는 '상대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거나 궤멸시키는 대대'라는 의미의 '강뉴부대(Kagnew Battalion)'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우리와 똑같이 식민지를 겪은 한반도를 위기에서 구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죽을지언정, 포로는 될 수 없다."

에티오피아 장병들은 최전방에 배치돼 북한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그 곳에는 구르무 담보바 이등병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 최고의 무반동포 사수였습니다.

 

에티오피아 장병들은 적과의 전투를 치르며, 또 다른 이중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바로 생전 처음 경험하는 눈과 혹한에 맞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르무 담보바 이등병을 비롯한 에디오피아 장병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텐트와 동굴 생활을 하며 격전을 펼쳤습니다.

 

구르무 담보바 이등병이 속한 강뉴부대는 강원도 화천 일대 700고지, 낙타고지, 요크고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데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르무 담보바 이등병은 허벅지와 엉덩이에 관통상을 입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결국 6·​25전쟁에 참전한 에디오피아 지상군 3천 5백여 명 중 1백여 명이 전사하고, 5백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1차 파병에서 부상당해 고국에서 진통제로 고통을 달래고 있을 때 다시 파병 명령이 떨어졌죠. 전쟁에 대한 참혹한 기억이 채 지워지지 않았지만, 전쟁으로 고통 받는 한국인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구르무 담보바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1차 참전 시 당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무기 다루는 기술과 리더십이 뛰어나 부대원을 지휘하며 당당히 전투에 임했습니다. 두 번의 참전에서 모두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냈습니다.

 

구르무 담보바를 비롯한 유엔참전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해 주었기에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먼저 해야 할 보답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