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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2017.12.29 조회 16,747 6
총격전 끝에 자결한 의열투쟁가 김상옥 의사 자막


(나레이션)
1890년 1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난 김상옥 의사는 20세 때 동흥야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또한 이전부터 종사하던 철물공장을 설립하여 종업원들과 이윤을 나누었습니다.
두 가지 일을 다 하는 김상옥 의사를 보며 철물공장의 친구가 말했습니다.

(철물공장 친구)
두 가지 일을 다 하려면 힘들지 않나~?

(김상옥)
아니, 괜찮아~

(철물공장 친구)
그래도 몸 좀 생각하면서 일하지 그래~?

(김상옥)
난 그래도 운이 좋아~
낮엔 일해서 돈 벌지, 밤엔 야학교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지.
이런 기회가 또 어디있겠나~?

(철물공장 친구)
아하 참, 여기도 독립운동하는 사람이 있네, 하하하하

(나레이션)
김상옥 의사는 야학교와 철물공장을 운영하는 일 외에도 이종소, 임용호, 손정도 등과 민족독립에 대한 일을 의논하고 실행했습니다.
김상옥 의사는 자신이 하는 일을 독립운동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식민지 하에 있는 것이 싫어 단지 뜻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상옥 의사는 하고자 하는 바가 여러 가지 있었는데 금주·단연운동을 크게 전개하였습니다.
또 말총모자공장을 설립하고 국산모자의 생산·보급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모자를 사려고 공장으로 왔습니다.

(남자)
이 모자를 조금만 사도 괜찮소?

(김상옥)
그럼요~. 단지 일본인이 만든 모자와 같이 팔지 않겠다는 약속만 한다면 양은 상관없습니다.

(남자)
아휴... 꼭 그래야 하오~?

(김상옥)
난 일본인이 만든 모자보다 더 잘 만들려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레이션)
그 사람은 김상옥 의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많은 양의 모자를 사가지고 갔습니다.
얼마 후 3·1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김상옥 의사는 윤익중, 신화수, 정설교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혁신단을 조직하였습니다.
게다가 기관지 <혁신 공보>를 발행·배포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였습니다.

김상옥 의사는 이처럼 일과 동시에 독립운동에 열심을 내어 일했습니다.
기관지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할 때, 김상옥 의사는 손에 힘을 주어 기관지를 그들에게 내주었습니다.

(김상옥)
난 이 기관지를 그냥 배포하는 것이 아니오. 태극기를 손에 쥐고 흔들듯이 기관지를 배포하는 것이오.
여기에 우리의 뜻이 담겨 있고, 우리의 피가 담겨 있다고 믿소.

(나레이션)
그리고 김상옥 의사는 1920년 봄에는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서원 김동순을 만나 암살단을 조직하였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일본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의 직접 행동으로 독립운동을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김동순)
김상옥, 이번에 들어오는 미국 의원단을 목표로 행동에 옮길 수 있겠나?

(김상옥)
그럼요. 저에게 기회를 주시는 겁니까?

(김동순)
그렇네. 자네에게 일을 맡겨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네.
그리고 이번 일은 한우석 말고도 세 명과 같이 일을 하게나.

(나레이션)
김동순과 이야기를 끝낸 김상옥 의사는 8월에 미국 의원단 일행이 서울에 들어오는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한우석 등과 함께 의원단이 남대문(지금의 서울역)에 하차할 때 시위와 총력전을 전개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의원단의 서울 도착 전 날에 일부 동지들이 잡혀감에 따라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김상옥은 그 때 한우석 외 세 명과 같이 있지 않아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김상옥)
아쉽다. 좋은 기회였는데... 다른 동지들은 어떻게 하지..?

(나레이션)
김동순은 김상옥 의사에게 중국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김동순)
잠시 동안만 피해있으시오.

(나레이션)
할 수 없이 김상옥 의사는 일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여 그 해 10월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습니다.
상해에서 의사는 김구, 이시영, 조소앙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지도와 소개로 중국의 지사들과 교류하면서 조국독립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김구)
김상옥. 고생했소.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소.

(김상옥)
이렇게 임시정부 여러분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김구)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소.

(김상옥)
서울에선 일이 틀어지고 다른 사람들은 잡혀갔는데, 저만 살아서 도망쳐 온 것 같습니다.

(김구)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오.
여기서 좀 더 많은 실전을 쌓으면 되오.

(나레이션)
의사는 그때부터 상해에 있으면서 무기를 다루는 법, 폭탄을 사용하는 방법 등 전쟁과 마찬가지로 실전 경험을 쌓고 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울과는 계속 연락을 취했습니다. 의사는 의열단원에 가입하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의열단은 일본인 침략 순회 또는 매국노를 살해하고, 만약 일이 잘못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습니다.

1921년 겨울 김상옥 의사는 의열단원으로 폭탄·권총·실탄 등의 무기를 휴대하고 동지 안홍한·오복영 등과 함께 서울에 잠입하였습니다.
이 때 김상옥 의사는 의열단장 김원봉을 통하여 서울에 있던 의열단원 김한과의 연락협력을 당부 받았습니다.

(김원봉)
자네가 가는 것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야.

(김상옥)
알고 있습니다.

(김원봉)
또 어떠한 일이 있던지 간에, 이 일이 임시정부의 일에 누가 되면 안되네.
서울에 가면 김한과 연락을 취하도록 하고.

(김상옥)
네.

(나레이션)
김상옥 의사는 훗날의 기약없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서울로 들어온 김상옥 의사는 동지들에게 연락하며 거사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김한은 김상옥에게 당부하였습니다.

(김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부담스럽진 않소?

(김상옥)
아니오.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오.

(김한)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정신 잊지 마시오.

(김상옥)
내가 살아남았던 것은 이 일을 위해서였던 것 같소.

(나레이션)
김상옥 의사는 서울에 들어온 1923년 1월 12일 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습니다.
그리고 일경을 피해 10여일간 은신하였습니다.
하지만 김상옥 의사는 1월 22일쯤 의사가 숨어있는 곳을 알아낸 일본 경찰과 치열한 총격전 끝에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자결.
장렬하게 승복하였습니다.

총격전끝에 자결한 의열 투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