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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6·25 전쟁영웅 2018.04.13 조회 2372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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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캡틴 코리아 김홍일 장군

 

 

도시락 폭탄을 제조한 독립운동가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에서 윤봉길 의사가 일본 왕의 생일 축하장에 

도시락 폭탄을 던진 사실은 모두들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시락 폭탄을 만든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1931년, 김구 선생은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지원합니다.

이 때, 상하이 병공창의 병기창 주임으로 근무 중이던

김홍일 장군이 바로 두 의사가 사용한 폭탄을 만들었습니다.

 

 

사진: 윤봉길 의거시 폭탄제조 교섭을 맡았던 김홍일 장군과 제조 기사 중국인 왕백수

 

 

당시, 김홍일 장군은 윤봉길 의사가 사용할 폭탄으로

도시락 폭탄과 수통 폭탄, 2개를 제조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는 달리, 도시락 폭탄은 불발되었고,

수통 폭탄이 폭발에 성공한 거죠.

 

 

이를 계기로 독립운동은 활기를 띠게 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폭탄을 제조한 김홍일 장군이 없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김홍일 장군은 중국 군대에 머물면서

한국 청년들을 독립군 장교로 육성하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김구 선생의 조언으로

한국광복군 참모장으로 돌아옵니다.

 

 

김홍일 장군은 6.25전쟁 때, 그의 진가를 또 한 번 발휘합니다.

 

"우리는 이 서울을 지켜야 한다.

이 곳을 잃으면 우리의 조국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단 3일이다. 3일만 조국을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내자."

 

장군은 시흥지구 전투 사령관으로 국군 5개 사단이 붕괴된 것을 수습하고

북한군의 한강 도하를 1주일간 방어했습니다.

 

 

제 1군단장에 오른 김홍일 장군은

금강과 소백산맥 일대에서 북한군 제 2사단의 남침을

5일 동안 막아냈으며, 낙동강 방어선인 영덕과 포항 일대에서도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등

국군이 반격 작전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1951년, 이승만 대통령은 김홍일 장군을 주 중화민국(현 대만) 대사로 임명하는 자리에서

오성장군으로 예우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군인으로서 우리나라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하면, 오성장군으로 제대시켜야 하는데

우리 군에 그런 제도가 없어서 그리 못했습니다."라며

 

장군의 공적을 치하하며 위로했습니다.

이는 중국군의 2성와 국군의 3성을 합쳐

존경의 표시를 담은 말입니다.

 

 

주 중화민국 대사로 임명된 김홍일 장군은

제 1공화국 내내 외교 활동에 주력합니다.

국회의원, 신민당 당수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정부에서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국훈장과 무공훈장,

중국 정부에서까지 훈장을 받다.

 

군인으로서, 외교관과 정치인으로서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김홍일 장군!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원한 캡틴 코리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