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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곤
6·25 전쟁영웅 2018.04.13 조회 1807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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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을 사수하라!'

한국판 베르뎅 전투의 영웅, 김점곤 육군소장

 

 

연합군이 프랑스 파리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펼쳤던 베르뎅 전투!

이 전투는 프랑스의 최고 요새인 베르뎅에서 약 10개월간 치러진 전투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아군과 적군 합쳐 1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참혹한 전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6.25전쟁에서도 베르뎅 전투에

비유되는 전투가 있었는 사실을 아십니까?

바로, 다부동 전투입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 연합군과 국군의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전선을 두고 벌어진 다부동전투.

 

아군은 대구 북방 유학산과 다부동 일대에 주저항선을 형성하여

북한군의 총 공세를 저지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곳에서 한 달 동안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게 된 걸까요?

 

 

이곳은 전술적 요충지로서, 사수 여부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려지게 되는 곳이었죠.

1950년 8월 3일부터 약 한 달 간,

김전곤 육군 소장이 이끄는 국군 제 1사단 제 12연대와 북한군 제 15사단이 혈투를 벌였습니다.

너무나 처절한 전투였기에 오늘날, 제 1차 세계대전의 베르뎅 전투에 비유되기도 하죠.

 

 

아홉 차례나 뒤바뀐 고지 쟁탈전!

고지를 뺏기 위한, 북한군의 대대적인 총공세가 시작됐습니다.

무려, 21,500명의 병력과 T-34전차 약 20대 등을 동원한 북한군의 무차별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 군의 병력은 겨우 확도병 500여 명을 포함한 7,600명에 불과한 상황!

적에 비해 열세한 병력으로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승리를 예견할 수 없었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김점곤 육군 소장은 적의 허점을 노려, 일격을 가합니다.

특공대를 편성하여 북한군의 저항선을 뚫었고,

낙동강 전선에서 총반격 작전으로 적 전차 4대를 파괴하며 

반격의 계기를 만들어 마침내 승리를 이끌어 냅니다.

 

 

다부동 전투의 승리는 무조건적인 병력 투입보다는

훈련된 병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자 했던 김점곤 소장의 지휘력과 용병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다부동 전투의 승리가 무엇보다 값진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이죠.

다부동 전투는 6.25전쟁의 판세를 뒤집은 결정적인 전투였습니다.

 

 

김전곤 소장의 반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있었던 제1사단은 10월 1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평양 탈환작전에 돌입, 평양에 제일 먼저 입성하여 국군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참군인의 표상,

김점곤 육군 소장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다부동 전투의 영웅으로 

우리 역사에 길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