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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기념관
현충시설 2018.04.13 조회 2388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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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큰 스승을 마나다

백범 김구 기념관

 

1895년 2월, 아직 십대인 한 청년이 사형을 언도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청년의 죄명은'국모보수'였습니다.

그는 을미사변 이후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일본인을 죽였죠. 하지만, 우연히 사영죄인 명부에 있는 그의 죄명을 이상히 여긴 한 승지의 기지로 어전회의가 진행되었고, 청년은 사형을 면하게 됩니다.

 

이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청년의 이름은 김창수, 훗날,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자 지도자가 된 백범김구 선생입니다. 선생은 인천 감리영에 이감되어 심문을 받고 있었죠. 사형이 정지된 날은 인천 감리영에 전화가 가설되고 불가 사흘 뒤였습니다. 만일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화 개통이 늦어졌다면, 황제의 명령이 도착하기 전에 벌써 사형이 집행되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역사를 바꾼 한통의 전화였죠.

 

그 후, 김구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신한 청년단과 한인애국단 등을 조직하여 윤봉길.이봉창 의사 등의 의거를 지휘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1940년에는 광복군을 조직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도 큰 활약을 하셨죠. 1948년에는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시도하며 평생을 민족의 화합과 번영을 위해 힘쓰셨습니다.

 

백범 김구 기념관은 2002년도 10월 22일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김구 선생의 위대한 삶과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고, 미래 세대에서 민족적인 이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소원했던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가 볼까요?

 

제일 먼저, 기념관 1층에 들어서면 중앙홀에서 김구 선생의 좌상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대형 태극기를 배경으로 앉아계신 위엄이 깃든 자태 앞에서 큰 절이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김구 선생은 부당한 현실에 당당히 저항하며, 나라를 위한 일에 앞장섰습니다. 동학 및 의병 활동실에서는 신분 차별을 하지 않는 동학 혁명의 선봉장이 된 이야기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군을 처단한 지하포의거에 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상실에서는 쉽고 재미있게 구성된 성생의 일대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2층 전시실에는 김구 선생과 독립 운동을 위해 애쓴 애국선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한말에는 6.25전쟁에 이르는 시기의 흑백사진들은 우리 근대사의 중요한 자료들입니다.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 내용과 기록문서, 편지, 임시의정원회의록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정 방침 등 우리나라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김구 선생의 자필 자서전 '백범일지' <백범일지>는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이 된 뒤 1928년 부터 쓰기 시작한 자서전 입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사에 대한 이야기가 잘 담겨 있어 보물로 지정되었죠.

 

백범 김구의 현상음 60만원은?

2층 전시실 한 구석에 걸려있는 이야기가 눈에 띕니다. 바로, 김구 선생의 현상금 사진입니다. 김구 선생은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그 배후로 지목됩니다. 김구선생을 체포하기가 어려워지자 현상금이 60만원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당시 60만원은 요즘 가치로 198억에 이른다고 하니, 김구 선생이 가진 영향력이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할 만 합니다.

 

독립의 넋이 잠들어 있는 곳 2층 전시실에는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사무사','민족정기'등 백범 선생의 글씨가 걸린 벽면을 따라 가다보면, 창밖으로 김구선생의 묘소가 보입니다. 이곳에서 평생을 독립을 위해 애쓴 김구 선생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백범 김구 기념관에 꼭 한 번 방문해 주세요.

후손들에게 훌륭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노력한 백범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통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배우고 이해하는 귀중한 시간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위치 : 서울 용산구 효창동 255 

관람시간

3월~10월(10:00~18:00)

11월~2월(10:00~17:00)

휴관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추석당일

관람료:무료

관람문의: 02-799-3433